'하이퍼나이프' 윤찬영은 왜 박은빈을 아가씨라고 불렀나 [엔터&피플]
천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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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나이는 아직 20대 초반이지만 연기 경력으로만 따지면 벌써 13년 차다. 아역배우를 거쳐 어느새 성인배우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한 윤찬영(23)은 앳된 얼굴과 달리, 조곤조곤한 말투와 신중한 자세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 9일 8회 전편이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연출 김정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제작: CJ ENM 스튜디오스‧블라드스튜디오‧주식회사 동풍)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정세옥(박은빈)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최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
윤찬영이 연기한 서실장(서영주)은 정세옥 덕분에 목숨을 구한 뒤 항상 그의 곁을 지키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캐릭터다. 심지어 정세옥이 살인을 저지르면 뒤처리를 담당할 때도 있다.
전 회차가 공개된 후 만난 윤찬영은 "대본을 읽은 분들마다 서실장에 대한 의견이 다 달랐다"며 그래서 캐릭터에 매력을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어떤 분은 서실장이 재밌는 캐릭터로 묘사됐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떤 분은 듬직하게 보디가드처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덕분에 재밌던 것 같아요. 그만큼 고민할 거리도 많고, 어떤 길을 가는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열린 캐릭터라는 거잖아요. 그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가장 욕심을 낸 지점은 단편적이지 않은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김정현 감독과 미팅을 할 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했고, 다행히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연기에도 더 자신감이 붙었다.
"단순히 웃긴, 가벼운, 정세옥을 따라다니는 캐릭터라기보단 서실장도 자신의 삶과 입장과 생각이 있는데 정세옥 곁을 지키고 도와줄 수밖에 없는 이유와 환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세옥이 힘들어하면 서실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아플 거고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할 거라고 봤어요. 반면 나쁜 짓을 할 땐 어떻게든 말리려고 할 거고요. 서실장의 그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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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서실장이 정세옥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삶을 살고 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과거 병에 걸려 죽을 날을 받아두고 살아가던 그를 살려준 사람이 정세옥이었던 것. 윤찬영은 정세옥을 빼놓고는 서실장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봤다.
"정세옥이라는 사람이 서실장 인생에 들어오고 나서 (서실장이 비로소) 꿈을 꾸게 된 것 같아요. 희망 없는 일상을 살다가 새 삶도 얻고 건강도 얻었잖아요. 정세옥을 쫓아다니면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 옆에서 삶이란 이런 거라는 걸 배울 수 있었을 거라고 보는 거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게 그렇게 이상한 부분은 아니었다고 봐요."
아가씨라는 호칭도 독특했다. 그는 서실장이 정세옥을 왜 아가씨라고 부르게 됐을지 펼쳐본 상상의 나래에 대해 얘기했는데,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현대 사회에서 자주 쓰는 호칭은 아니잖아요. 아가씨와 실장이라는 관계가 비즈니스도 아니고 가족 관계도 아니고 애인 관계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런 별칭이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박은빈 누나랑 생각했던 건 정세옥이 처음 서실장을 만났을 때 '이름 뭐 할래? 서실장으로 해' 했듯이 '너 나 뭐라고 부를래?'라고 물어봤을 것 같아요. 그 뒤에 장난삼아 '아가씨라고 불러' 얘기했는데 (서실장이) 그냥 철석같이 따라 했고, 그게 이어져 온 게 아닐까 싶었죠."
이번 작품에서 윤찬영이 가장 많이 맞붙은 상대는 박은빈이었다. 자연스럽게 박은빈과 함께 한 시간도 많았고, 이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그에게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일단 (박은빈의) 에너지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보면 무거운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와 즐거운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죠. 또 순식간에 몰입했다가 순식간에 빠져나오는 능력이 프로답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연기적으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단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혹여나 자신이 선배의 시간을 빼앗는 걸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다. 정말 배려심 가득한 후배였다.
"(박은빈이 연기한 정세옥이) 작품의 축이 되는 인물이고 해내야 할 게 너무 많은 역할이잖아요. 현장 밖에서 만나서 질문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마지막 촬영 날에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써서 꽃다발과 함께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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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빈뿐만 아니라 대선배 설경구의 연기를 현장에서 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또한 큰 의미였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성장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됐다. '하이퍼나이프'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항상 딴 데 갈 게 아니라 모니터 뒤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게 배우로서, 또 연기를 좋아하는 윤찬영으로서 너무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연기적으로 영감도 받았지만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프로 중의 프로이신 분들 사이에서 스스로 부족함도 많이 느꼈고, 그만큼 더 나아갈 희망도 생겼다고 할까요.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확실하게 본 것 같아요. 박은빈 누나도 아역배우부터 시작했고 저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잖아요. 누나와 현장에서 호흡하면서 뭐가 옳고 뭐가 그른 건지 기준점이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고 봐요."
아직은 경험할 게 더 많은 나이다.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일단 목표는 보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이성적이고, 깔끔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런 진중한 태도는 윤찬영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처럼 느껴졌다.
"배우라는 직업이 바쁠 때 바쁘다가 안 바쁠 땐 너무 안 바쁘잖아요. 여기에서 오는 차이를 줄여야겠다 싶더라고요. 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작품에 대한 준비도 돼 있었으면 좋겠고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했을 때 안정적인 일상이 중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럼 어떤 변수가 생겨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집에서 규칙적으로 지내려 하고 음식도 직접 해 먹는 편이고 집도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해요. 운동도 독서도 규칙적으로 하니까 할 게 다양하더라고요. 하하"
언젠간 지금껏 연기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윤찬영의 변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나중에 정세옥 같은 역할을 꼭 한번 도전하고 싶어요. 실제 박은빈 누나도 현장에서 너무 즐거워 보였고, 작품에서 나오는 것을 봤을 때도 배우로서 즐거워 보이기도 했죠.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천윤혜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