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 '초집중'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
용인 고기동 시골마을서 개업
초창기 손님 거의 없었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홍보·메뉴개발
"내 가게 찾아올 이유 만들어야"
고객이 행복해야 주인도 행복
모든 손님과 눈 마주치며 인사
작은 디테일 챙기는 진심경영
손님처럼 테이블서 주문한 뒤
음식 먹어보며 품질 테스트도
광교산과 백운산 자락 골짜기에 놓인 경기 용인 수지구 고기동. 계곡 길을 10여 분 달리자 막국수를 파는 식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문을 연 작은 막국수집은 13년 만에 연 매출 40억원을 올리는 전국적인 맛집으로 거듭났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2월 계열사 주요 임원들에게 김윤정 고기리막국수 대표가 쓴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 지난 1일 기자와 만난 김 대표는 “찾아주신 손님께 기쁨을 드리고 그 기쁨이 우리에게 행복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업의 본질’이라는 걸 깨달았을 뿐”이라며 “고기리막국수는 손님께 ‘초(超)집중’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고기동까지 왔습니까.
“남편(유수창 셰프)과 결혼 후 2001년 서울 압구정동에 일식당을 차렸습니다. 장사가 잘돼 가게를 두 곳까지 늘렸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문을 닫을 처지에 몰린 거죠.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몸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많은 빚을 떠안은 상황에서 남은 선택지는 남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당을 차리는 것이었죠. 가게 자리를 찾다 보니 고기동까지 왔어요. 남편이 한 자리를 보더니 갑자기 ‘여기만 따뜻한 빛이 비치는 것 같아’ 하더군요. 다음날 계약금 500만원을 내고 덜컥 계약했습니다.”
▷첫 사업은 왜 실패했나요.
“일식당을 할 땐 ‘음식이 맛있으면 손님은 당연히 찾아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메뉴는 80가지가 넘었죠. 하지만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남들과 비슷한 가게였습니다. 10년 넘게 장사했지만 기억나는 손님 하나 없었죠. 손님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란 걸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왜 막국수였습니까.
“막국수는 장이 예민한 남편이 평생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결혼 후 매년 여름휴가를 강원도로 갈 정도로 막국수를 좋아했죠. 막국수로 정한 다음엔 전국에 있는 식당을 돌며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처음부터 장사가 잘됐나요.
“처음엔 손님이 거의 안 왔어요. 친정아버지도 ‘누가 여기까지 와서 막국수를 먹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전단을 뿌리고 싶어도 오가는 사람조차 없었죠. 홍보 수단을 고민하다가 네이버 블로그가 떠올랐습니다. 막국수집과 관련된 얘기를 조금씩 풀어놓자 손님이 하나둘 찾아오더라고요.”
▷막국수집 운영은 달랐나요.
“장사하면서 제일 힘든 게 바로 기다리는 거예요. 조바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막국수집을 열고 나서 처음 맞은 겨울, 하루에 단 한 그릇을 판 적도 있었죠. 손님이 너무 없어 제가 그랬어요. ‘이런 추운 겨울에 누가 막국수를 먹으러 오겠어, 떡국이라도 끓여보자’고.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겪었는데도 겨울철 메뉴를 새로 만들어 손님을 끌어오자는 생각을 한 거죠.”
▷떡국은 효과가 있었습니까.
“너무 추워서 막국수 면을 씻는 남편의 손이 벌게진 어느 날이었어요. 한 손님이 물막국수를 주문하셨죠. 속으로 ‘이런 추운 날에 저 손님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차가운 물막국수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드셨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저 손님은 추운 겨울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집에 와야 할 이유가 있었구나. 그게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그때부터는 흔들리지 않고 막국수 외길만 걸었죠.”
▷분점을 낼 생각은 안 했나요.
“사실 많은 유혹이 있었어요. 백화점에서 파격적인 분점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가 2019년 현재 자리로 확장 이전하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손님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를 잊지 말자’고. 한때 유명했던 맛집이 사라진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손님까지만 모시자’고 남편과 늘 다짐합니다.”
▷접근성이 아쉽긴 합니다.
“성심당 빵은 대전에 가야만 먹을 수 있죠. 대전에 가야 할 이유가 그래서 생기는 것이고요. 저희는 용인 고기동이라는 낯선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동네였지만, 막국수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손님들께 여기까지 와야 할 이유를 드려야 저희가 계속 일할 수 있고, 직원들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겠죠.”
▷친절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직원들에게 항상 손님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하루에 손님 1000명이 와도 그 손님과 접점을 반드시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눈앞의 손님에게 집중하면 감사한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죠. 단 몇 초만 집중하면 충분합니다. 식당은 단순히 음식과 음식값을 등가교환하는 걸 넘어서는 ‘그 무엇’이어야 합니다. 고마움, 행복감 이런 감정들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채워져야죠.”
▷추구하는 고객 경험이 있습니까.
“식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기억을 쌓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화하는 거죠. 인생을 살다 보면 실패도 하고 잘 안 풀릴 때가 있죠. 그때 이곳에 와서 힘을 얻고, 위로받고, 행복한 기억을 쌓고 가셨으면 해요. 잔잔한 음악과 생화, 따뜻한 마룻바닥, 적절한 조도의 조명은 그런 공간으로 기억되도록 해주는 장치죠.”
▷단체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단체 손님은 참 매력적인 제안이죠. 하지만 단체 손님과 한 공간에 있는 다른 손님들은 다릅니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시겠죠. 저희는 한 번에 많은 손님을 받는 것보다는 한 번 오신 손님이 열 번, 스무 번 찾아주시는 걸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혼자 오시는 손님도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아기 막국수를 무료 제공하네요.
“대부분 식당의 메뉴는 어른 위주로 짜여 있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어떻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록 할까 고민한 끝에 36개월까지 아기 손님에게는 아기 막국수를 무료로 내어주기로 했어요. 초등생까지 제공하는 어린이 막국수 가격은 13년째 인상 없이 계속 3000원입니다.”
▷‘진심 경영’은 기업에서도 통할까요.
“제가 책을 쓴 이유는 자영업자, 사장님들과 장사에 임하는 태도나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어서였어요. 진심 경영이든 고객 중심이든 결국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지사지’입니다. 저희는 1년에 280번 막국수 품질을 테스트할 때 항상 손님처럼 테이블에 앉아 주문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 입장에서 먹어보는 거죠. 진심 경영이 허공에 맴도는 구호에 그쳐선 안 됩니다. 디테일하게 이곳저곳 스며 있어야 합니다.”
용인=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