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어려워 사람 손이 만드는 변압기
美 전력수요 폭증에 선제적 투자로 대응
부산공장 증설하면 초고압 생산능력 7천억
배전시장 주도권도 속도…“송배전 모두 공략”
26일 LS일렉트릭 부산 사업장 내 작업 현장. [고은결 기자] |
[헤럴드경제(부산·울산)=고은결 기자] “초고압 변압기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집니다. 지금은 예약이 꽉 차 수주를 더 못할 정도로 바쁜 상황입니다.”
지난 26일, 부산 화전산단 내 LS일렉트릭 초고압 변압기 생산동. 국내 유일의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압기 생산기지인 이곳은 요즘 말 그대로 ‘풀가동’이다. 컨테이너 두세개를 붙여놓은 듯 거대한 초고압 변압기들이 줄지어 있고, 공정 대부분은 자동화가 어려워 여전히 사람 손을 탄다.
푸른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은 동각선(순도 99.999% 이상 순동)을 권선기에 정성스레 감고 있었다. 거대한 원통 모양의 권선기에는 전류를 흘려 자속을 발생시키거나 서로 결합하도록 설계된 코일을 2000~3000바퀴 감아야 한다. 최형석 LS일렉트릭 부산공장 제조팀장은 “자칫 느슨하거나 너무 팽팽하게 감기면 안 돼, 사람 손이 꼭 필요하다”며 “보통 15~20년 경력의 숙련된 작업자들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26일 LS일렉트릭 부산 사업장에서 작업자가 권선 작업을 하는 모습 [고은결 기자] |
이 공정이 끝나면 규소강판을 가공해 철심을 적층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여러명의 작업자들은 정밀한 손놀림으로 가공된 철심을 층층이 쌓는다. 이어 본체 조립, 진공 건조가 이어진다. 최 팀장은 “건조 과정에선 온도를 올리고 떨어뜨리며 내부 수분을 뽑아내야 한다”며 “154킬로볼트(kV)급 초고압 변압기 제품을 5일간 건조할 때 나오는 수분은 무려 100리터“라고 설명했다.
수분까지 바싹 말린 뒤엔 탱크 용접, 절연유 주입, 최종 시험까지 거쳐 하나의 변압기가 완성된다. 이날 공장에서 본 345kV급 완제품 높이는 12m에 달한다. 4층 아파트 높이다. 수개월간 정성 들인 초대형 ‘핸드메이드 전력 기계’다.
26일 LS일렉트릭 부산 사업장에서 작업자가 철심 적층 작업을 하는 모습 [고은결 기자] |
요즘 이곳은 유례 없는 초호황을 겪고 있다. 북미에선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본격화됐고,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해서다. 허영무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 공장장은 “생산동을 증설하고, 향후 2027년까지 정규직 100명, 협력사 인력 300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1년부터 해외 수주가 잇따르며, LS일렉트릭은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은 2019년 26%에서 지난해 56%로 껑충 뛰었다. 미국 매출만 78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성장세는 2030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생산동 건너편에선 2생산동 공장 부지 타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LS일레트릭은 총 1008억원을 들여 1만3223㎡(약 4000평) 부지에 새 공장을 짓고 있다. 연면적은 기존 1생산동보다 1.3배 넓고, 생산 능력은 2.3배 많다. 허 공장장은 “4월 철골 공사를 시작해 7월 말 마무리, 9월 준공해 10월부터 생산에 들어간다”며 “올해 4분기에만 400억원 규모 물량이 이미 확보돼 있고, 대부분 북미 수출용”이라고 말했다.
새 공장에는 진공건조 설비(VPD) 2기가 추가되고, 조립장·시험실·용접장 등 전 생산공정이 들어설 예정이다. 증설이 완료되면 부산사업장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연 2000억원 수준에서 4000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LS일렉트릭의 수주 잔고는 약 3조1000억원 수준으로, 향후 5년치 일감을 미리 확보해놨다.
생산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LS일렉트릭은 지난해엔 LS파워솔루션(구 KOC전기)도 인수했다. 1979년 설립된 LS파워솔루션은 부산·울산에 사업장이 있고 몰드·건식·유입식 등 전 종류의 배전 변압기를 생산한다. 최근 기업공개(IPO) 준비를 시작했는데, IPO로 자금을 조달해 핵심 계열사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26일 LS파워솔루션 울산 사업장에서 김현일 울산공장 전무가 설명하는 모습. [고은결 기자] |
이날 함께 찾은 울산 공장은 중소기업 중 유일하게 154kV급 변압기 제작이 가능한 곳이다. 지난해 296억원을 투입해 7개월 만에 증설을 마쳤고, 현재 총 제조면적은 1만5074㎡(약 4560평)에 이른다. 생산 품목도 기존 154kV급에서 230kV급 초고압 변압기로 확대했다. 김현일 LS파워솔루션 울산공장 전무는 “2025년 예약 물량은 이미 찼고, 2026~2027년 수주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변압기는 주로 한국전력 등 국내 업체에 납품돼왔다. LS파워솔루션은 LS일레트릭과 손잡고 해외 수출 비중을 현재 10%에서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주요 제품은 육상에서 사용되는 154kV 초고압 변압기, 배전변압기(몰드·건식·유입)와 해상용 선박 변압기 등이다. 특히 국내 조선소에서 쓰는 선박 변압기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든다. 김 전무는 “국내 조선소의 대부분 선박 변압기는 LS파워솔루션 제품으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현재 일본·대만까지 수출 중”이라고 설명했다.
울산공장의 생산 능력은 연간 1000억원. 올해 말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의 증설이 완료되면 전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연간 7000억원(LS파워솔루션 포함)에 이르게 된다. 회사 측은 초고압 변압기 매출이 2027년 연간 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30년 목표는 1조원(해외 7000억원)이다.
한편 LS일렉트릭은 해외 생산 거점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고압 송전 전력인프라에 이어 실제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시장 확대는 필연적이란 판단에서다. 2022년 미국 배전 전문업체 MCM 엔지니어링을 인수했고, 이듬해 텍사스주 배스트럽에는 부지를 매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본격화되는 배전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해 송·배전 시장을 모두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