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의 자괴감…“합법인 사람과 불법인 사람 어디 있나”

고경태 기자 2025. 3. 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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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인종차별철폐협약 보고서 논란, 소라미 위원 인터뷰②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 아동과 청소년들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2025년 3월31일 종료되는 ‘한시적 구제대책’의 상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소라미 인권위원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일과 7일, 24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인종차별철폐협약, 대한민국 제20·21·22차 정부보고서 심의 관련 인권위 독립보고서의 건’을 심의해 독립보고서의 권고 제안을 확정했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은 국내법 울타리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및 아동, 난민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국제조약이다. 유엔(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과 제도 개선 책임을 가입국에 지우고, 정부보고서를 받아 협약 이행 상황을 확인한다. 인권위는 이 과정에서 독립 보고서를 별도로 제출해 정부 정책 보고서를 검토하고, 관련 정책을 선도하는 노릇을 해왔다.

곧 유엔에 제출될 인권위의 독립보고서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애초 인권위 사무처가 제시한 국가 주도의 인종차별 철폐 법제화, 난민신청자 및 인도적 체류자 보호 조치,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 성년이 된 이주 아동 체류권 보장 등 핵심 권고 내용이 대거 삭제되거나 축소됐다. 일부 인권위원은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인종차별 문제가 없다”, “난민 가족이 위험하면 다른 나라로 가면 되지 않냐”, “차별을 막기 위한 법을 만들라는 권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까지 했다. ‘정부 보고서보다 못하다’는 인권위 안팎의 비판이 나왔다.

한겨레는 지난 26일 오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소라미 위원을 만나 ‘인종차별철폐협약’ 인권위 독립보고서 논의 과정을 들었다. 한국의 1세대 공익변호사로 20여년간 이주여성 및 아동 분야에서 활동해온 소라미 위원은 인권위원 가운데 이 협약에 관한 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해가 안 됐다”, “아쉬웠다”고 조심스레 표현을 고르던 소라미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 기어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불법 체류자’라고 쓰면 안 되는 이유

― 색안경을 쓰고 이주노동자를 보는 이유는 뭘까.

“이주노동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 또 어떻게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사는지 현실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알고 현실을 알면 ‘불법 체류자 양산’의 프레임으로만 볼 때와 좀 다른 게 보일 것 같다. ‘불법 체류자’라고 말할 때도 그 사람들이 다 무슨 엄청난 형사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묶어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 정부도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국내체류 외국인’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강정혜 위원은 전원위에서 “왜 불법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냐”고 강하게 말했다.

“최근 영국 쪽 아동 관련 문헌을 보는데, 범죄를 저지른 아동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범죄 아동’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런 표현이 아동에게 어떤 식으로든 낙인효과를 가져다주니까 ‘차일드 인 컨플릭트 위드 로’(Child in Conflict with law)라고 표현한다는 거다. ‘불법 아동’, ‘범죄 아동’이라고 안 하고 ‘법과 갈등 관계에 있는 아동’이라고 했다.

‘불법 체류 노동자’라는 말이 가져오는 낙인이나 통합 저해 효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들이 직접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는 유튜버들이 있다. ‘불법’이라는 네이밍 속에, 그들을 우리랑 같이 살아가는 어떤 이웃이나 시민으로서 보는 게 아니라 범죄자화 하는 거다. 그러면 그들을 배제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시민들이 나서서 단속하는 것이 마치 생명을 구한 의인처럼 명예가 되는 프레임이 생긴다. 그래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불법과 합법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별하지 말라는 권고하고, 정부도 그런 노력을 조금이나마 하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재한외국인 처우법에서 ‘불법체류 외국인’ 용어를 삭제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인종차별의 현장’은 어디일까.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낸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임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정부의 한시적 구제대책 기한이 끝나 현장에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쨌든 인권위에서 구제대책을 지속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법무부에 했다. 법무부에서도 바로 한시적이나마 제도를 연장해 다행이다. 이제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난민 인정자에 대해서는 내국인과 동일한 처우를 받도록 난민법에서 보호하는데, 난민 인정자가 아니더라도 난민 신청자나 인도적 체류자(난민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등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여전히 공백이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소라미 인권위원이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소통 방법 고민 계기…현장 사례 더 전해야”

― 이주노동자 등의 가족 결합권과 주거권, 이주 아동의 교육 권리와 성인이 되는 경우 체류 연장 등에 대한 인권위 사무처의 권고안을 놓고 김용원·한석훈·강정혜 위원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정말 과도한가?

“인권위가 정책을 결정하는 단위, 즉 정부 부처의 장관이거나 국장이라면 그런 말씀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실을 반영해 좀 더 엄밀하게 정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위 전원위에서의 논의는 인권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권고에 대한 부분이므로 최선의 방향을 제시해야 옳다. 정부에 100%를 이야기하면 5%, 10%밖에 이행하지 않는 게 현실이기에 권고 내용은 이상적이어야 한다. 유엔이 강제할 수 없지만 권고를 하고, 당사국은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을 보고하는 것이다. 이런 게 거듭되면서 개선의 방향을 찾는 게 국제인권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예산을 얘기하면 권고를 못 한다. 그냥 ‘정부가 잘하고 있네’라고 끝날 수는 없지 않나.”

― 인종차별철폐협약 독립보고서 심의를 마치고 난 특별한 소회가 있을 것 같다.

“논의 수준에 많이 충격 받기는 했지만, 앞으로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계기도 됐다. 어떤 주장을 할 때 내가 가진 원칙이나 입장만을 고집하기보다는, 해당 이슈와 관련해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이야기했을 때, 그나마 반대의견을 가졌던 위원들이 조금이라도 듣고 약간의 ‘워딩’이라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가령 이주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서 출생한 아동의 국적취득 절차(어머니 국가에 출생신고된 서류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절차)를 완화하자는 권고제안에 대해 일부 위원들이 반대하길래, 네팔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미혼모의 자녀 출생 신고가 안 되고 난민 인정자의 경우 본국에서 자녀 출생신고가 어려워 어머니 국가에서 출생신고 서류를 제출할 수 없는 사례를 이야기하니 동의해주더라. 앞으로도 현장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인권위 안에서 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2020년 11월 ‘공공기관 상담·통번역·이중언어 이주여성 노동자 처우개선 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여성에 대한 호봉제 도입과 비정규직 이주여성들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자괴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미안함

―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인종차별철폐협약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도한 차별도 문제이지만 알지 못해서 배제한 결과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공장에서, 논과 밭, 어선에서, 가사와 돌봄 현장에서, 식당과 서비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이 없으면 우리는 이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런 이주민 중에 체류기간을 초과하거나 부여받은 체류자격과 다른 일을 해 소위 ‘불법’ 체류자라 불리는 이주민들이 있다. 그들 역시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역할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 필요로 하는 사업주와 사업현장이 있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기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합법인 사람과 불법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해서 받아들이고 일하도록 했다면 그들의 인권 또한 차별 없이 보호하는 것이 우리가 공동체로서 지향해야 할 가치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이라는 국제사회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 인권위는 계엄을 정당화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인권위에 희망이 있나.

“자괴감과 무기력감, 시민사회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게 있다.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이 전원위에서 통과될 수 있는 현재의 구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지금 구도로 가면 얼마나 의미 있는 권고를 할 수 있을까. 위원 변동이 있지 않은 이상 현실이 바뀌지 않겠지만, 역사가 기록을 할 거다. 혹독하게 평가받고, 또 그거에 대해서 또 개선해 나가고 하면서 발전하지 않을까.”(웃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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