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인하우스' 전략 논의
AI칩 경쟁력 확보 방안도 모색삼성전자는 퀄컴, 애플, 미디어텍 등과 함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한 최첨단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스템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시스템 반도체 수요는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뛰어들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삼성이 진입장벽이 높은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메모리 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먹거리’로 선정하고 2019년부터 매년 조(兆) 단위 자금을 투입해온 이유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를 따라주지 못했다. 스마트폰 AP는 퀄컴에, 이미지 센서는 소니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는 TSMC란 벽에 막혀 작년에만 1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이 그룹 내 최고 기획·전략통이 모인 경영진단실을 투입해 경쟁력 강화 방안 찾기에 나선 배경이다.
숫자만 보면 삼성 시스템LSI사업부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DDI는 세계 1위(작년 점유율 약 30%)이고 이미지센서는 일본 소니에 이어 2위(19%)다. AP 시장 점유율은 5%에 그치지만 ‘톱5’는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성장이 멈췄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시스템LSI+파운드리) 매출은 2021년 이후 4년째 20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의 매출 비중이 7 대 3인 점을 감안하면 시스템LSI사업부 매출은 수년째 5조~8조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기간 퀄컴 매출은 335억달러에서 389억달러로 16.1% 증가했다.
라이벌 기업에 경쟁력이 밀린 것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 삼성 모바일경험(MX)사업부가 만드는 스마트폰 갤럭시S25에 삼성 시스템LSI사업부가 제조한 엑시노스2500이 아니라 퀄컴 스냅드래곤 칩이 들어간 게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용 AP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현대자동차에 인포테인먼트용 엑시노스는 납품했지만 자율주행용 칩 입찰에선 퀄컴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센서는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자국 제품 장착을 늘리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작년 초 시작한 ‘고객사 맞춤형’ AI 반도체 개발 사업도 1년이 다 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네이버와 손잡고 시작한 AI 가속기 마하1은 ‘멈춤’ 상태이고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에 공동 개발을 타진한 마하2의 수주 낭보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경영진단실은 엑시노스 AP를 담당하는 SOC(통합칩셋)사업팀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처럼 자사 스마트폰 전용 AP를 개발하는 ‘인하우스’ 조직으로 정체성을 바꾸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고객사를 늘리는 방안 또한 주요 컨설팅 안건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거론된다. 이들 기업에 이미지센서를 납품하면 단번에 매출과 이익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LSI사업부는 내년 공급을 목표로 빅테크 납품 성사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주문형 AI 반도체 설계 사업도 진단 대상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드컴, 마벨 등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에 특화한 경쟁사와 어떻게 차별화할지를 놓고 머리를 맞댈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안팎에선 시스템LSI 감사·컨설팅이 끝나면 진단 결과에 맞게 조직 개편과 후속 인사를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