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말라리아에 걸리면 O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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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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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말라리아 균을 인간에게 옮기는 암컷 아노펠레스 모기(Anopheles quadrimaculatus)의 사진이다. 아노펠레스는 그리스어 속명으로 '쓸모없는'이라는 뜻인데, 이 모기종은 주로 아시아의 말라리아 매개체에 속한다.

예전에 어느 집안의 장손인 사내가 학질에 걸려서 2년 동안이나 낫지 않고 있다. 남자는 학질이 발작하자 솜털이 곤두서고 기지개와 하품을 하며 추워서 떨고 턱을 부딪치며 등뼈 마디가 모두 아파왔다. 특히 두통과 관절통, 근육통이 무척 심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학질(瘧疾)은 요즘으로 말하면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주로 열대지방에서 발병하는 감염병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었다. 아주 옛날부터 조상들을 괴롭혀 온 감염성 질환으로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당시에는 학질의 원인과 병증을 이해하기 힘들어 귀신이 병을 옮긴다고 해서 학귀(瘧鬼)라고 부르기도 했다. 학질은 치료도 어려워서 굿을 하거나 다양한 미신적인 방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내는 한기를 느꼈다가 열이 났다를 반복했다. 의원들은 따뜻하면서도 발산시키는 약들을 많이 처방했다. 비위를 너무 차게 하는 것은 크게 금기시되었는데, 찬 약을 많이 쓰면 회복되더라도 후유증이 남기 때문이었다. 의원들이 여러 처방을 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이 오한이 들면서 열은 오르락내리락 해고 증상은 기복을 보이면서 반복되었다. 사내는 호전되지 않고 몸은 점차 쇠약해졌다.

사내의 가족은 결국 어느 명의에게 치료를 부탁하게 되었다. 그 명의는 조상 때부터 의술을 업으로 삼하 비방을 전수받았고,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의술을 공부해서 벌써 50이 넘었기 때문에 의술에 능통했다.

사내의 아버지가 “제 아들놈 좀 살려주시구려. 학질에 걸렸는데 도무지 여러 의원들의 약방문을 먹여 봤지만 차도가 없소. 그 놈은 우리 집 장손이요. 내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릴테니 제발 아들놈 좀 살려주시오.”라고 간청을 했다. 명의는 “제가 한번 치료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소문을 듣고서는 몇 명의 의원들이 명의의 치료를 보고자 했다. 의원들 중에는 자신이 치료하지 못한 병을 어찌 치료하는지 보고서는 배우려는 자도 있었고, 일부는 ‘설마 명의라도 치료가 가능하겠어?’라고 하면서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명의가 진찰을 해 보니 사내의 병세는 무척 심했고, 몸이 쇠약해서 약을 곧바로 투약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명의는 약재를 처방하는 대신에 침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 의원이 “학질에도 침이 놓습니까? 학질에는 약물치료가 우선이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또한 다른 의원은 “의서에 보면 학질의 맥이 완(緩), 대(大), 허(虛)할 때는 약을 써야 하고 침을 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명의는 “이미 많은 의원들이 약물 처방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소문> 자학론(刺瘧論)의 오십구자(五十九刺) 편에 보면 ‘학질에 걸렸을 때 한번 찌르면 쇠하고 두 번 찌르면 물러가고 세 번 찌르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내경의 이론을 믿고 침치료를 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미 루시루험(屢試屢驗)한 바 있습니다.”라고 했다.

루시루험(屢試屢驗)이란 여러 번 시도를 해서 여러 번 검증이 되었다는 말이다. 명의는 오랫동안 의술을 행하면서 의서를 많이 읽고 동시에 그에 따른 경험이 많아서 당황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그럼 어디에 침을 놓을 생각이요?”라고 말이다.

그러자 명의는 “<내경>의 <소문> 자학론에서 상세하게 ‘모든 학질이 낫지 않으면 열손가락 사이를 찔러서 출혈을 시킨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침을 놓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한 의원이 “다른 혈자리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손가락 사이를 출혈을 시키겠다는 것입니까? 무슨 연유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명의는 “환자는 손과 팔이 저리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기에 먼저 손으로 흐르는 경락에 침을 놓는 것이고 그래서 팔로 흐르는 경락이 지나는 손가락 사이에 침을 놓아서 출혈을 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손가락 사이에 침을 놓아 출혈을 시키는 것을 팔관대자법(八關大刺法)이라고 합니다.”라고 했다.

명의는 학질이 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치료를 했다. 학질의 병세가 그렇듯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환자는 갑자기 오들오들 떨면서 열이 나기를 반복했다. 의원은 사내의 열 손가락 사이의 물갈퀴 부위를 찔러 출혈시켰다.

혈자리로 보면 팔사혈(八邪穴)이었다. 팔사혈을 찌르고 나서 어느 정도 출혈이 되고 나서 피가 그치더니 환자의 한열왕래(寒熱往來)의 증상이 바로 멈췄다. 사내는 으슬거리는 것도 없어지고 열도 내렸다. 팔과 어깨가 아픈 증상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고서 그 신기함에 놀랐다.

팔사혈(八邪穴)은 원래 경외기혈로 12경락에 속하지 않는 혈자리다. 의서에 보면 ‘고열이 있고 눈이 아프며, 눈알이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치료한다. 자침하여 출혈시키면 바로 낫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팔사혈의 의미는 사기(邪氣)가 머무는 8군데라는 의미로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손가락 관절염에도 다용되고, 손과 팔이 저리거나 손의 부종에도 효과가 좋다.

평소 깍지를 끼듯이 해서 반대손의 팔사혈 부위가 자극이 되도록 지압을 하면 좋다. 또한 양 손의 주먹을 쥐고 튀어나온 중수지관절을 서로 어긋나게 맞대서 반대손 중수지관절로 반대손의 팔사혈 부위를 자극해 주는 방법도 좋다. 통증이 있는 경우는 기혈이 막힌 것으로 해당 부위를 더욱 자주 자극해 주면 좋다.

과거 해열제나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익히 현존하는 치료법으로 어떻게든지 환자를 치료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면 모두 사용되었을 것이다. 팔사혈 출혈법 또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문헌을 보면 예를 들어 발열이 있을 때 열이 내리지 않으면 곡지를 사하고, 절골을 보하고, 함곡혈과 팔사혈에 출혈을 시키라는 문구들이 있는데 옛날에는 임상에서도 침구치료로 해열을 시켰음을 알 수 있다. 요즘도 고열감기, 심한 인후통, 어린아이들의 열성 경련에 소상혈이나 상양혈을 출혈시키는 응급 치료법이 있는데, 실제로 말초부위의 출혈은 일시적으로라도 열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명의는 사내에게 반복적으로 침치료를 하고서는 증상이 조금 안정이 되자 그제야 처방을 해서 복용하도록 했다. 사내는 명의의 치료로 2년 이상 고생한 지긋지긋한 학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급성열성 전염병으로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에게 물려서 발병한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가벼운 감기 증상에서부터 호흡곤란, 발열, 두통이 생기고 합병증으로 저혈압, 뇌성혼수, 폐렴, 심근염 등이 유발되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말라리아는 열대지역에서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을 여행할 때는 항말라리아 제제를 복용한다. 말라리아 백신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에는 말라리아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최근에도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들이 보고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2024년 올해 말라리아 환자가 700명을 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잘 낫지도 않고 아주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주 힘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면 ‘학을 떼다’라고 표현한다. 또한 아주 어려운 상황을 ‘늙은이 학질 떼기보다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학’은 바로 말라리아를 뜻하는 학질이다. 누군가 ‘학을 뗀다’라는 표현을 했다면 학질에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 만큼 지긋지긋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질병이든지 인간관계 속에서도 학을 뗄 일이 있으면 안 될 것이다.

* 제목의 ○은 ‘학(瘧)’입니다.


<유문사친> 餘嘗用張長沙汗下吐三法,愈瘧極多. 大忌錯作脾寒, 用暴熱之藥治之. 縱有愈者, 後必發瘡疽, 下血之病, 不死亦危. 餘自先世, 授以醫方, 至於今日, 五十餘年, 苟不諳練, 豈敢如是決也! 又嘗觀刺瘧論五十九刺, 一刺則衰, 再刺則去, 三刺則已. 會陳下有病瘧二年不愈者, 止服溫熱之劑, 漸至衰羸, 命予藥之. 餘見其羸, 亦不敢便投寒涼之劑, 乃取《內經·刺瘧論》詳之曰:諸瘧不已, 刺十指間出血. 正當發時, 餘刺其十指出血, 血止而寒熱立止. 鹹駭其神, 餘非炫術. 竊見晚學之人, 不考誥典, 謬說鬼疾, 妄求符, 祈禱辟匿, 法外旁尋, 以致病患遷延危殆. (나는 장창사의 발한법, 설사법, 토법의 세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 학질을 치료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비장을 차게 하는 것은 크게 금기시되기 때문에 아주 뜨거운 약재를 사용해서 치료했다. 환자가 회복되더라도 상처와 출혈을 겪게 되고, 죽지 않더라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나는 조상 때부터 의술을 배워왔는데, 50여년이 지난 지금, 실천에 능숙하지 않다면 어찌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소문 자학론의 오십구자에 보면 ‘한번 자하면 쇠하고 두 번 자하면 물러가고 세 번 자하면 낫는다’라고 하는 것을 예전에 진하지방에 학병이 있어 2년 동안 낫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만 온열한 약제만을 복용하여 점점 쇠약해져서 나에게 약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 사람이 쇠약한 것을 볼 때에도 역시 함부로 한량한 약제를 곧바로 투여하지를 못하다가, 이에 내경 자학론에서 상세하게 말한 ‘모든 학질이 낫지 않으면 열손가락 사이를 찔러서 출혈을 시킨다’이라고 한 것을 취하여, 학질이 발작할 때에 내가 십지간을 자락하여 출혈시켰더니, 피가 나오는 것이 그치면서 한열의 증상이 곧 멈추어서 모두 그 신기함에 놀랐다.)
<내경-소문> 刺瘧者, 중략. 先手臂痛者, 先刺手少陰陽明, 十指間. 先足脛痠痛者, 先刺足陽明, 十指間, 出血. (학질에 침놓는 것. 중략. 먼저 손과 팔이 아픈 자는 먼저 수소음경, 수양명경과 십지간에 침을 놓고, 먼저 족경이 시리고 아픈 자는 먼저 족양명경과 십지간에 침을 놓아 피를 낸다.)
<향약집성방> 諸瘧血脈不見者, 刺十指間出血, 血去必已. 先視身之赤如小豆者, 盡取之. (여러 가지 학질에 혈맥이 나타나지 않으면 열손가락사이를 침으로 출혈시켜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낫는다. 먼저 몸을 살펴 적소두같이 벌건 곳이 있으면 모두 취혈하여야 한다.)
<동의보감> 傷寒, 大熱不止, 取曲池瀉ㆍ絶骨補ㆍ陷谷出血ㆍ八關大刺十指間出血. (상한으로 열나는 것이 내리지 않으면 곡지를 사하고, 절골을 보하고, 함곡에 출혈시키고, 팔관대자법으로 열 손가락 사이를 출혈시킨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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