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25 대전형무소 사건, 유해 감식으로 ‘민간인 희생’ 진실 찾아
1년 전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결과 신원이 확인된 대전형무소 재소자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피해 확인)을 받았다. 이 희생자는 제적등본이 실제 사망 추정일과 다르고 형무소 수감기록도 없었다. 희생 사실은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참고인 진술뿐이어서 자칫하면 ‘진실규명 불능’ 결론이 날 뻔했으나 유해발굴에 이은 신원 확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진실화해위는 15일 제105차 전체위원회에서 ‘대전·공주·청주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2)’과 관련된 30명에 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정치·사상범으로 분류돼 있던 대전·공주·청주형무소 재소자 대부분이 적법절차 없이 대전 산내 골령골, 공주 왕촌 살구쟁이, 충북 청원군 남일면 분터골과 남일면 쌍수리 야산 등에서 집단희생된 일이다. 2022년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돼 지난해 4월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남성 길○○(1927년생)도 대전형무소 재소자로 분류돼 진실규명 대상자 이름에 올랐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를 보면, 길씨의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1949년 연행됐다”고 전해 들었다. 길씨는 결혼 뒤 대전과 전북 금산군(현 충남 금산) 부리면을 오가며 살았는데, 어느 날 부인이 있던 대전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이튿날 경찰들은 길씨를 데리고 와서 집을 수색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대전형무소로 아버지 면회를 간 적도 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가장 가까이 살던 큰고모가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의 학살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부리면 시댁으로 뛰어가 ‘길○○이 죽은 것 같다’고 알려줬다. 부인은 학살지인 대전 산내 골령골로 갔으나 주검은 수습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아들은 국가기록원에서 아버지의 행형기록을 입수했는데, 1946년 미군정 시기 포고2호를 위반해 구류를 살고 1948년 10월 공소기각(불기소)됐다는 기록뿐이었다. 어머니가 대전형무소에 면회를 갔다고 했으나, 수감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의 제적등본에는 “1969년 본적지에서 사망”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아들은 진실화해위에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해 놓았으나, 진실규명 불능 결정 가능성이 컸다. 제적등본 등 기록이 맞지 않으면 신청인·참고인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어도 ‘불능’으로 결론이 날 우려가 있는 게 조사1국의 분위기였다. 사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던 과거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운 좋게도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길씨에 대한 신원 확인은 진실화해위가 발굴 유해에 대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2023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유가족 유전자 검사’의 첫 결실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4월25일 총 2위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는데, 그중 1위가 54구가 여러층으로 포개져 나온 골령골 학살지 제1지점에서 양팔 부근이 전깃줄 등과 함께 발굴된 길씨였으며, 또 다른 1위는 아산 배방급 공수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나온 하상춘이었다. 하상춘은 지난해 10월 진실화해위로부터 충남 아산 군경에 의한 민간인희생사건 희생자로 진실규명을 받았다.
익명을 요청한 아들 길아무개(76)씨는 “아버지가 떠난 뒤 24살에 혼자 된 어머니가 인삼 행상을 하면서 남매를 키웠다”며 “제가 사회생활 시작할 때까지 혹시 아버지가 살아오실까 제사를 안 모셨다”고 했다. 길씨는 “저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지만, 유전자감식을 통해 운 좋게 신원확인이 되고 그 덕분에 진실규명이 됐다. 더 많은 희생자와 유족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진실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2기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를 앞두고 3기 진실화해위를 준비 중인 국회 안에서는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 등을 사후 위령사업이 아니라 주요한 희생자 조사방법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곧 발의할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에 이러한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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